역사는 삶의 스승인가 - 코젤렉의 목소리에 답하여

참고.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나간 미래』, "역사는 삶의 스승인가". 43-75p

 

 

 역사는 삶의 스승 - 이 실로 역사적인 토포스가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고전적인 해석에 따르면, 역사라는 무궁무진한 범례의 화수분은 현재의 인간이 미래로의 바람직한 노선을 걷는데 있어 스승으로서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며 그것이 역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이 역할 설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고래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긍정되어왔던 이 토포스의 역사적 의미에서의 변이과정을 들추고 근대 아니, 현대를 배경으로 ‘역사’ 라는 개념의 형성과정을 고찰하면서 결국 가속화된 시간축을 기점으로 재구성된 역사의 함의에 대해 돌아보고자 한다.

 

 ‘역사는 삶의 스승’ 이라는 토포스에 따라 근대 이전 역사의 영역에 있어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연속성은 과거의 역사, 정확히는 역사상의 동일한 범례들에 의해서 근거로써 보증되며 징후로써 파악되었다. 이는 기독교의 태초의 창조에서부터 구원 내지는 종말에 이르는 일방통행적인 역사 도식은 물론이고 이교도의 세속사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코젤렉에 따르면 이전까지 완만히 진행되고 발전되어 무수한 범례가 교훈으로서 유의미할 수 있을 정도로 동일한 시간축으로써 파악될 수 있었던 역사적 흐름이, 기술적인 생산증가에 힘을 얻은 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그에 기대한 바에 따른 낙관적 미래를 상정하게 되어 이전까지의 시간의 흐름이 가속화되어버린 근대를 맞으며 이 토포스는 더 이상의 함의를 갖지 못하게 된다.

 

 이는 근대라는 인류가 이전까지의 시공간과 달리 처음으로 맞닥뜨린 새로운 경험공간에서, 역사의 개념과 그 의의가 범례의 보고에 기댄 교훈적 이야기로서의 역사로부터 개별 사건들의 행위의 결과 · 사건 그 자체를 의미하는 역사로 전이됨에 따라 나타난 것으로, 과거 다양한 범례에 대응하여 복수의 언어적 개념으로 파악되었던 역사, 즉 역사들은 그에 따라 역사 자체로서 서사적 통일성이 부여된 역사라는 대표 단수로 치환된다.

 

 그 역사가 가지는 함의는 이제 단순한 범례의 집합이나, 사건의 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근대의 태동 시점에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대표적 개념으로서의 자유, 진보, 정의, 혁명 등의 가치와 동위선상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진보는 역사를 초자연적으로 규정하고 역사가 그 자체로서 유의미함을 명증하는 개념으로서 그에 따라 봉건적 연대기와 천문학적 자료에 기초한 역사적 해석은 거부되었고 역사의 진보를 향한 방향성만이 유의미하게 되었다.

 

 전술한 방향성은 잇따른 혁명의 과정에 기초한 것으로, 그 경험은 역사서술의 조작가능성도 불러왔지만 새로운 역사의 생산 가능성에 대한 긍정과 확신은 과거 역사에 대한 기대를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수 있게 된 이유로 기능하였다.

 

 코젤렉의 역사에 대한 개념사적 접근은 ‘역사는 삶의 스승’ 이라는 토포스에 대해 안티테제의 입장을 고수하며, 그것은 근대라는 가속과 지연의 범주가 교차하며 프랑스혁명으로 대변되는 경험과 이후의 진보에 대한 기대가 맞물리는 자기가속적 시공간에서 역사에 대한 개념의 변천과정을 서술하는 것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기에 과거로의 회귀를 끊임없이 단축하는 자기가속적 미래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역사와 역사서술, 역사학에 있어 회의적인 의미로 기능하고 있음을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적인 역사와 역사학은 방법론적 측면에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급성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와 역사철학의 한계 역시 이로부터 분명해진다. 역사는 더 이상 인류에게 스승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다.

 

 코젤렉이 파악한 역사의 지평선에서 노회한 과거의 문헌, 범례모음집에 불과할 자료더미는 이미 그 수명을 잃었다. 그것은 이미 흘러간 3차원의 공간에 유착된 골동품에 불과하다. 고정된 공간에 불과한 3차원이 아니라 가속화된 시간이 더해진 4차원적 공간으로 설정되는 근대, 아니 현대의 시간축에서 역사는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생동하는 현재의 흐름 속에서만 유의미하며 헨리 아담스가 말한 바와 같이 마침내 역사의 역할은 행로의 나침반을 제시하는 스승이 아니라 행동의 반응을 충고하는 조언자에 불과할 뿐이 되었다.

 

 

 

 

 신이라는 절대성의 표상이 비추던 일방통행로의 한계를 깨닫고 중세라는 공간의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생들에게 인간 이성과 그 합리적인 가능성의 발견은 실로 위대한 일이었다. 비록 신과 이성, 절대와 합리가 결국은 이음동의어에 불과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고 이성이라는 합리적 고속도로가 이전의 그것과 동일한 일방통행로일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해 브레이크는 배제된 채 가속되는 액셀페달만이 허락된 노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제 인류는 역사라는 이름의 백미러와 창문을 돌이켜볼 여유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다 할지라도.

 

 그것도 역시 역사의 지난한 과정의 일부이며, 인류가 이제껏 밟아온 역사의 방향성에 기댄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 방향성의 이름은 ‘진보’ 이며, 그것은 현재를 아무리 열정적으로 산다고 해도 쉽사리 자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부단한 흐름을, 그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것이 백미러든 창문이든 앞좌석의 무엇이든 거울을 보는 이유는 단순히 유리를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얼굴, 즉 지금까지 쌓아 올려온 인생 행보를 돌이켜 보고 앞으로의 노선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돌이켜 보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것을 위해 진정 역사를 돌이켜 보는 참된 방법은 단순한 범례의 집합을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하여 열거하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죽은 역사’에 불과할 뿐이다. 지나간 범례 뿐 아니라, 생동하는 역사와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던 개개의 인물들의 사례를 반추하는 것을 통해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양 역사 서술의 시초이자 전형을 이룬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 세가, 서, 표, 열전으로 구성된다. 이 중 본기와 그 부속 개념이라 할 수 있을 세가, 서, 표는 제왕과 제후들의 연대기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 칸트가 말한 바에 따를 때 이는 연대기에 따른 역사에 불과하다. 사기의, 동양적 역사 서술의 정수는 제왕이나 왕조 · 지나간 사실의 나열에 불과한 본기와 그 부속이 아닌 자신이 처한 시대와 상황을 맞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갔던 개개의 거칠고 생동하는 인간 군상들을 담아낸 열전에 있다.

 

 바로 여기에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만들어내는 살아서 맥동하는 ‘인간’ 의 존재가 있으며 이것을 기록하고 돌이켜보고, 그것을 현재의 삶과 인류의 행보에 적용하는 것이 진정 ‘살아있는 역사’를 대하는 자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코젤렉의 역사와 역사는 삶의 스승이라는 오래된 토포스에 대한 개념사적 접근과 그 논증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근대라는 현대까지를 지배하는 서양 문명이 이룩한 인류 역사의 특별한 시공간의 성과 안에서 가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위대한 성과에 ‘인간’의 존재가 소외되진 않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 나만의 우문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 문명이 역사의 주체로서 파악한 인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근대와 그 연장선상인 현대의 가속화된 시간축에서 더 이상 역사가 스승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맞아 현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세는 살아있는 역사를 찾아가는 부단한 과정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과거의 역사를 골동품이나 유물 대하듯 소중히 하는 자세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보라는 역사의 방향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는 자세로부터 가능하다. 진보만이 역사를 살아있는 역사로 유의미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는 바로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의 방향성으로서의 진보를 설정한 서양의 역사와, 역사를 만드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중요시한 동양의 史는 통합될 수 있다.

 

 여기에 내가 그리는 역사와 역사의 역할이 존재한다. 이것이 우문에 대한 나의 자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유의미한 현답으로 만드는 것은 상기한 미력하기 그지없는 모순토성이의 언설이 아니다. 앞으로 추구하는 자신의 삶만이 그 답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나의 스승이라 말할 수는 없다. 역사는 앞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은 독립된 주체로서의 나’ 라는 존재가 살아야 할 삶으로써 그것이 살아있는 역사로 증명될 수 있길 바라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끝없는 지평선이다.

 

 

 

 

 

by 아시 | 2011/04/13 10:53 | 트랙백 | 덧글(0)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숨이 턱 막힌다.

보아도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하겠고

들어도 들리는 것을 자각하기 힘들다.


나날이 낯을 두껍게 칠해 가는 쥐떼의 포악한 횡포 속에서

이제 하나 남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마저 우리 곁을 떠났다.


누구를 위하여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리도 높이 울었었던가.

누구를 위하여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리도 슬프게 울었었던가.

누구를 위하여...








...그곳에서는 적어도 외로우시진 않겠지요.

부디, 편안히 잠드시길...







by 아시 | 2009/08/19 00:26 | 트랙백 | 덧글(0)

7년의 짧은 꿈, 긴 역사의 지평에서 영원히 빛나리


 

 

 

 

2002년의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 쯤이라고 기억한다.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선을 앞두고 과연 누구를 지지할까 고민했었다.

이전까지 현실 정치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었지만
딱히 별다른 이유 없이도 한나라당과 그 무리의 행태에는 반감이 들었고
그에 따라 이회창이란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는 애초부터 없었다.

때마침 한창 바람을 일으키며 점화된 노풍을 보며
새로이 알게 된 정치인이 노무현이었다.

당시 그의 자세한 정치역정은 알지 못하였고 별다른 관심도 없었으나
국민경선의 와중에 무명이라 생각했던 그가 당시까지만 해도
당내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이인제를 제치고
국민지지도 1위까지 올라서는 모습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후 지지율의 상승추세는 많이 감소되었고
당시의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에 힘입어 떠오른 정몽준에게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자 '과연 대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이회창, 정몽준보단 낫겠지.'
'정치는 원래 항상 최선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최선은 권영길이겠지만 차선 차악이라면 그라도 괜찮겠지.'

이런 막연한 변명으로 자신을 설득하며
역시 막연한 지지의사를 심중에 품게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웹서핑 중 알게 된 스포츠 칼럼과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사이트,
"후추" 의 누드게시판에서 이 몇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때, 마음 속에 자리했던 모든 불안함과 의문과 막연함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는 이전에 없던 굳은 마음이 들어섰다.
"이 사람이면 믿을 수 있다"는.

처음으로 한 정치인에 대한 "믿음"이라는 형태의 지지의사가 솟아난 순간이었다.

그리고 2년 후, 국회에서 그에 대한 탄핵 소추 조짐이 일고 있다는소식은
나를 아무 망설임 없이 여의도의 길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그 곳에서 3일 내내 촛불을 부여 잡고 밤을 지샜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탄핵 소추는 가결되었지만, 처음에는 미약한 듯도 보였던 촛불의 행렬은
이내 큰 파도가 되어 몸뚱이에 시린 피곤의 기색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국민의 손에 의해 그는 다시 돌아왔고, 나도 마음 한켠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임기 초반의 위기는 걷혔으니 이제 탄탄대로가 남아 있으리라던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았다.

길지 않은 임기 내내, 수구세력과 족벌언론은 그를 참 많이도 물어뜯었다.
그리 많지도 않았던 지지 세력과 진보진영의 일각들도 속속 발을 빼며 그에 합세했다.
무책임한 사람들 역시 그에 편승하여 모든 것을 그의 탓으로 돌리며 그 야만의 무리에 합세했다.

그토록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진보나 보수나 수구나 할 것 없이 
노무현 죽이기엔 그렇게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그의 책무를 다할 뿐이었다.

당장은 그를 몰라주고 욕하는 사람과 세상이 아쉽고 한스러웠지만
그를 믿고 그가 그리고 만들어 나가는 나라의 앞날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기대했기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좀 더 역사와 국민을 믿고 나아가자는 다짐을 했더랬다.

아니, 그가 있기에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막연한 기대와 대책 없는 낙관은 내 희망을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려 버렸다.

정치인의 탈을 쓴 거짓말쟁이, 무책임 무원칙 무능력의 3무를 자랑하는 전과 14범의 사기꾼 무뢰한이
다른 방법도 아닌, 국민의 손에 의한 당선으로 새로운 권력자가 된 것이다.

절망과 탄식의 글 쪼가리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낙관과 반대로 비관의 전망은 오래 가지도 않고 여지 없이 들어맞아,
전과 14범이 이번엔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고 말았다.

생생했던 길바닥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다시금 두 손엔 촛불이 쥐어졌다.

함성은 메아리가 되어 곳곳을 울렸으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거짓말쟁이와 그 추종세력의 반격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퇴임한지 1년이 조금 지난 뒤 나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야 말았다.



  



"조선 건국이래로 600년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노무현, 대선 레이스 중의 연설에서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단순한 자살이라 생각하는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털어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의 자살은 지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자살을 선택할 정도의 정신적 강함으로는 지도자가 되기까지와
되고 나서의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압박감을 끝내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표면적 사실과 그 이면에 가려진 실체적 진실은 궤를 달리 할 수 있다.

그가 예전에 말하였듯, 작금의 상황을 민주주의가 들어서기 전
왕정시대에 등치시켜 본다면 이해가 빠르리라.

명확한 증거도 없는 추정에 근거하여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먼지털이식 정치 보복을 하면서
수사와 관계가 있든 없든 모든 사실을 스포츠 생중계라도 하듯이 떠들며
전 국가 원수까지 지냈던 사람에게 대대적으로 모욕을 줬다.

그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그들이기에
지속적으로 그의 처자식과 핵심 동지들, 주변 사람들,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을 법한 사람들을
모두 소환하며 그들을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고 인민 재판을 자행했다.

그렇게 지도자, 정치인 이전에 한 인간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끝내 그의 서거에 이르기까지...

사학법 폐지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서, 과거 노태우 정권 시절 국방부장관을 지내며
군납과 관련해 억대의 금품을 수뢰하고 율곡산업 비리에도 연루되어 구속된 바 있는
이상훈이라는 쓰레기가 내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삼족(三族)을 멸해야 한다"는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망발은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왕정시대의 이전 역사와 달리 극형이 허용되지 않는 민주정시대에 이르러
이토록 한 개인을 몰아붙인 일이 있었던가?

언론, 정계 모두 한통속이 되어 그를 비난하기에 바빴고 무책임한 국민들은 그 비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앵무새처럼 그를 비난하는 데 합세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단순히 궁지에 몰린 인간의 한 극단적인 선택으로서의 자살이 아니라
명백하게 정치적 보복 의도에 의한, "포괄적" 살인이다.

노무현은 온갖 중상모략과 무책임한 비방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법을 빙자하고 언론을 가장한 폭압적 권력에 의해 하늘로 돌아갔다.






한 촌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많이 배우지 못하였고 많이 가지지 못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 하나만으로 이 사회에 뛰어들었고,
치열하고 부단하게 역사와 국민 앞에 당당한 삶을 살았다.


마침내 그는 대통령이라는 만인지상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지만,
그에게 진짜 권력은 쥐어지지 않았다.

이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학벌과 연고주의,
패거리 지역정치의 울타리에 걸터 앉은 주류가 아니라
언제나 그것을 타파하고자 우직하게 정도를 걸어온
아웃사이더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진짜 권력자, 수구족벌언론과
친일독재파시즘의 잔당들은 그를 참 많이도 욕했다.

그리고 한때는 그 반대편에서 그를 지지했던
이른바 진보의 무리들 역시 그를 무던히도 욕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란 업무를 수행했던 나날은
하루하루가 칼날을 걷는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허나 모두가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모든 것을 그의 탓으로 돌려도
그는 묵묵히 그의 길을 전진할 뿐이었다.


임기가 끝나 모든 짐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시골 촌부의 삶으로 보내고자 했으나
그를 적대했던 후안무치한 무뢰배들은 그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언제나 서민의 입장에 서서 진리를 외치며 부당한 권력과 맞서고
스스로 권력자가 된 후에도 그것을 국민에게 돌려주었던 사람.

끝내 부당한 권력을 쥔 무뢰배들로 인해 잠시 세상과 이별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역사와 국민을 위해 살다간 지성인이자 참다운 지도자의 이름으로 
청사에 영원히 그 이름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몬 후안무치한 야만의 무리들에겐
지옥불의 철퇴가 내릴 날이 머지 않을 것이다.

그를 알고 나서의 7년 간, 그가 있기에 꿈을 꿀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 마음껏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란 내 오랜 꿈을.

그가 있기에 행복했고 그가 있기에 뿌듯했으며 그가 있기에 안심했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안심이 그를 이대로 보내게 만들어 버렸다.

그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지 않고

정의를 외치고 진리를 외친 대가로

십자가에 매달려 삶과 작별했다.

그 옛날 어떤 성인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참 많은 사람의 짐을 대신 떠안고서,

참 많은 가치를 대신 떠안고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이승에서의 삶과 잠시나마 작별했지만

그는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리고 그가 외쳤던 정의와 진리의 가치를 위해서

다시금 일어서는 모든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속에서.

나도 언제까지 절망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가 있기에 꿀 수 있었던 지난 7년 간의 짧은 꿈이,

긴 역사의 지평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을 횃불이 되어 비칠 것을 알기에.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by 아시 | 2009/05/25 05:2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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